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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새벽 칼럼]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임새벽 기자 | 기사입력 2026/07/07 [14:27]

[임새벽 칼럼]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임새벽 기자 | 입력 : 2026/07/0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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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새벽 원뉴스 발행인·대표기자

사람의 기억은 흐려진다. 그러나 기록은 시간을 견뎌낸다.

 

기자로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만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기억으로 말하지만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결국 기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보면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해서만은 아니다. 사람의 기억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하고, 상대방은 또 다른 입장에서 사건을 설명한다. 목격자 역시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여기에 이해관계와 감정까지 개입하면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기자가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때 필요한 것이 기록이다. 취재수첩에 남겨진 메모, 계약서와 공문서, 당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통화 내용,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 금융거래 내역 등은 사람의 기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취재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자료 하나가 몇 달 뒤 사건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날짜 하나, 문장 한 줄이 서로 다른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기록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취재 과정에서 잊어서는 안 된다. 문서는 작성한 사람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고, 통계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문자메시지 몇 줄만 떼어놓으면 전체 대화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며, 사진과 영상 역시 촬영된 시점과 앞뒤 상황을 확인하지 않으면 잘못 해석될 수 있다. 기록을 확보하는 것만큼 그 기록이 만들어진 배경과 맥락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오늘날에는 기록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 너무 많은 기록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아졌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자신의 주장을 세상에 공개한다. 몇 분이면 수많은 사람에게 정보가 전달된다. 하지만 정보가 많아졌다고 진실까지 저절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주장, 기록과 해석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특히 짧게 편집된 영상이나 일부만 공개된 자료는 강력하다.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상 앞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공개되지 않은 부분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사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 제시한 '증거'를 기자가 그대로 받아써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은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진실을 왜곡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록을 믿는 태도보다 기록을 검증하는 습관이다. 문서가 있다면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작성했는지 확인하고, 숫자가 있다면 원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한쪽에서 문자메시지를 제시했다면 가능하다면 전체 대화를 살펴야 하고, 녹음이나 영상이 있다면 편집 여부와 앞뒤 맥락도 확인해야 한다. 여러 기록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사실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언론이 기록을 다루는 방식은 한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확인되지 않은 자료 하나를 결정적인 증거처럼 보도하면 누군가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중요한 기록을 외면하거나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면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힐 수도 있다. 속보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확인되지 않은 기록을 먼저 공개하는 것이 정확한 보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기록의 또 다른 가치는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남겨진 자료는 원인을 밝히는 근거가 되고, 실패한 정책의 기록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교훈이 된다. 사회가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도 누군가 그때의 사실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 작성한 기사 한 편은 당장 하루가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몇 년 뒤 같은 사건이 반복됐을 때 과거의 기사는 중요한 기록이 된다. 당시 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어떤 문제가 제기됐는지, 정부와 기업은 어떤 대책을 내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는 오늘을 설명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내일을 위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 기자의 기억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기보다 기록을 남겨야 하고, 남겨진 기록 역시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기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믿어서도 안 되지만, 기록 없이 기억만으로 진실을 주장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빠른 뉴스는 오늘을 채운다. 정확한 기록은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이 다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고 묻게 될 때, 결국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누군가 남겨놓은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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